논증의 형식으로 생각을 표현하기
우리가 논증의 형식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 우리는 한민족이다. 우리는 통일해야 한다. ------A
우리는 한민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해야 한다. ------B
A와 B는 같은 논증이지만 B는 접속사 '그러므로'를 명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보다 확실하게 논증의 모습을 보입니다. 즉 논증을 사용하는 이유는 내가 믿고 있는 어떤 것을 상대방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또 내가 불확실해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여 해답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의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논증을 사용하거나, 문제에서 시작하여 답의 발견에 이르기 위해 논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논증이 아무런 문제 없이 수용되면 그 논증은 '논리적'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 나의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순박하다. 왜냐하면 농촌 생활은 단순하고 그런 생활은 사람들을 순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어제 만난 상영이는 나의 고향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순박하다.
얼핏 보기에도 이 논증은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논증이 논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의 문장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나의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다.
(2) 농촌 생활은 단순한 삶이다.
(3) 농촌 생활은 사람을 순박하게 만든다.
(4) 나는 어제 상영이를 만났다.
(5) 상영이는 나의 고향에 사는 사람이다.
(6) 그러므로 상영이는 순박하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상영이가 순박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명 가지 근거와 이유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6) 은 결론적 주징이고, (1), (2), (3), (4), (5)는 이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나 이유들입니다. 위의 주장을 무리가 없다거나 또는 논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결론과 결론을 뒷받침해 주는 명제들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논리성이 명제득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은 위의 예를 조금 바꾸어 놓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 대흥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넉넉하다. ..........(1)
상영이는 마음이 넉넉하다................(2)
그러므로 상영이는 대흥동에 사는 사람이다.............(3)
결론은 (3) '상영이는 대흥동에 사는 사람이다'이고, (1)과 (2)는 이를 뒷받침해 주는 문장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흥동에 사는 사람이 모두 마음이 넉넉하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대흥동에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영이는 서울에 살면서도 마음이 넉넉할 수 있기 때문에 (1)을 참이라고 해도 결론 (3) 은 (1), (2)로부터 도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논리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 논리적인지 비논리적인지는 "승원이는 어제 자전거를 샀다."처럼 하나의 문장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문장들의 연결 관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즉 '논리적'이라는 말은 논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논리학은 논증을 구성하는 명제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분별하는 원칙과 절차에 관한 학문입니다. 하나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올바르거나 올바르지 않게 도출되었는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논리학은 이런 목표를 위해서 문장들의 외적 연결 형식에 관심을 갖기만 문장들이 실제로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는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문장들이 모두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논리적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음의 예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예) 모든 사슴은 표범이다....................(1)
모든 코끼리는 사슴이다.................(2)
그러므로 모든 코끼리는 표범이다.
위의 문장들이 모두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코끼리는 표범이다'는 결론은 (1), (2)로부터 무리 없이 도출됩니다. 즉 위의 문장들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